Home NC News 믿음과 의심은 공존합니다,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도 의심했습니다

믿음과 의심은 공존합니다,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도 의심했습니다

믿음과 의심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한인 성도도 신앙이 흔들리는 순간을 겪습니다. 켄터키(Kentucky)의 목회자 폴 프래더(Paul Prather)의 묵상이 그 흔들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줍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도 의심한 제자들

마태복음(Matthew) 28장에 인상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Jesus)이 제자들을 갈릴리(Galilee)의 한 장소로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그곳에서 살아 계신 주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제자들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은 경배했지만 일부는 의심했습니다. 흔히 도마(Thomas)만 의심했다고 기억하지만, 이 구절은 더 많은 제자가 의심했음을 보여 줍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의심했습니다. 무엇보다 경배와 의심이 같은 순간에 함께 있었습니다. 직접 목격한 제자들도 흔들렸다면, 우리가 흔들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의심은 죄가 아니라 믿음을 키우는 도구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을 끝없이 이야기하지만 의심을 말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러나 프래더는 의심도 믿음만큼 현실적이고 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의심이 성숙한 믿음의 핵심 요소라고 봅니다.

특히 의심은 우리를 정직하게 만듭니다. 낡은 상투어 몇 마디에 인생을 맡기는 신앙을 막아 줍니다. 스스로 만족하며 교만해지지 않도록 계속 찾게 합니다.

또한 의심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아는 것이 적은지 일깨웁니다. 마음으로 확신이 서지 않는 날에도 행동으로 믿음을 이어 가며 하나님을 신뢰하게 합니다. 프래더는 이런 의심을 하나님이 우리를 자라게 하시는 도구라고 표현합니다.

믿음과 의심, 진짜 반대말은 확신입니다

작가 앤 라모트(Anne Lamott)는 톰 신부(Father Tom)에게서 들은 말을 전합니다. 믿음의 반대말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라는 말입니다. 확신은 핵심을 놓치는 것이고, 믿음은 혼란과 공허함을 알아차리고 빛이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두는 일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모든 것을 확실히 안다면 믿음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잘 모르고 증명할 수 없을 때 비로소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의심은 서로 싸우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자라는 관계에 가깝습니다.

교리보다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

리처드 로어(Richard Rohr)의 행동과 묵상 센터(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는 최근 의심을 주제로 일주일 분량의 묵상을 발표했습니다. 공통된 메시지는 서구 기독교가 정통 교리(orthodoxy)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지적입니다.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바르게 사는 삶, 곧 바른 실천(orthopraxy)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뜻입니다.

이와 관련해 브라이언 맥라렌(Brian McLaren)은 예전에 믿음을 올바른 신념의 문제로 여겼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의심이 그 신념을 하나씩 깎아 내는 동안, 믿음이 삶의 방향이며 사랑으로 드러나는 삶의 방식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에게 의심은 믿음의 죽음이 아니라 신념을 넘어선 새로운 믿음의 탄생입니다.

의심이 찾아올 때 실천할 수 있는 방법

이민 생활은 외로움과 불안, 자녀 걱정으로 신앙을 흔들기 쉽습니다. 그럴 때 의심을 숨기기보다 정직하게 마주하는 편이 신앙을 더 단단하게 합니다. 다음 방법을 차근차근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 의심을 죄로 여기지 말고 기도로 하나님께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 믿어지지 않는 날에도 예배와 섬김, 나눔을 이어 갑니다.
  • 신뢰하는 목회자나 소그룹 식구와 고민을 나눕니다.
  • 마태복음 28장을 천천히 읽으며 제자들의 마음을 묵상합니다.

랄리(Raleigh)와 샬롯(Charlotte)을 비롯한 각 지역 한인 교회에서도 이런 고민을 나누는 자리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의심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예배는 멈추지 않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 앞에 그대로 나아가는 것이 제자들이 걸었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