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은 소리치지 않습니다 – 존재로 증거되는 복음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정은 참 귀한 것이지만, 그 열심이 때때로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는 태도로 흐를 때, 오히려 세상과의 벽은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외쳤던 복음이 오히려 거부당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복음은 본래 큰소리로 외쳐야 하는 진리가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는 『To Change the World』에서 “신실한 현존”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세상을 바꾸는 가장 복음적인 길은 하나님 앞에서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빛은 소리치지 않지만,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하는 법입니다.
세상을 바꾸려는 열심이 아이러니를 낳을 때
복음을 증거하려는 순수한 열심이 오히려 세상과의 갈등을 만들게 되는 이유는, 때때로 우리 안에 자리한 교만과 조급함 때문입니다. 진리를 외친다고 해서 진리가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는 시간을 통해, 그리고 인격과 공동체를 통해 서서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외치는 것보다, 그 가운데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더 큰 설득력을 가집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세상의 복이 되었는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상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너는 복이 될지라”(창세기 12:2)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큰소리로 외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걸어간 순종의 삶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노라”(창세기 21:22)라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을 드러내는 통로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5:14). 이 말씀은 단지 정체성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존재 방식에 대한 부르심이었습니다. 빛은 설명하지 않아도 밝힙니다. 교회는 설명보다 증거가 되어야 하며, 설교보다 삶이 먼저여야 합니다. 결국 빛은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지, 외침으로 강요되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로마를 향해 어떤 정치적 언어도, 혁명적 구호도 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돌보며 복음의 진리를 살아냈습니다. 로마가 감동한 것은 말이 아니라 인내였습니다. 변화는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작고 충실한 삶에서 비롯된다는 진리를 보여준 것입니다.
공동체가 회복될 때, 복음 설득력을 갖는다
바울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며”, “서로 섬기라”는 메시지를 반복했습니다(로마서 12:10, 골로새서 3:13, 갈라디아서 5:13). 교회가 먼저 이 ‘서로’의 문화를 회복할 때, 세상은 비로소 교회를 대안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복음은 관계 속에서 실현되며, 사랑과 용서로 드러나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권면했습니다(베드로전서 3:15). 누군가가 질문하게 되는 시점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이 나올 때까지, 우리가 삶으로 소망을 증명하고 있는가입니다. 대답은 말이 아니라 삶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한 사람을 진심으로 섬길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상의 아픔과 마주하게 됩니다. 개인의 문제 속에는 사회의 구조적 고통이 담겨 있습니다. 진심어린 섬김은 단지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복음을 연결하는 다리가 됩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한 선교적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을 향한 사랑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즉각적인 반응과 빠른 열매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발효의 원리를 따릅니다. 진리는 인내 속에서 증명되며, 복음의 영향력은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낸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초대교회가 로마를 변화시킨 것도 수백 년의 순종과 헌신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외로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공동체’
현대는 외로움과 단절이 깊어가는 시대입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마음을 나눌 공동체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가장 설득력 있는 복음은 ‘함께 있음’ 그 자체입니다. 교회는 말로 외치는 대신, 존재로 살아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를 돌보고, 함께 울며, 함께 웃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세상을 향해 외치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말씀을 따라 살아낼 것을 요청하십니다. 하루하루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따라 살아가는 삶, 세상과 다르게 선택하고, 다르게 사랑하는 그 존재 자체가 빛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감당해야 할 변화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복음의 방식으로 세상 속에 뿌리내리는 삶인 것입니다.
복음, 말보다 삶이 진리를 말합니다
이 시대는 말이 넘칩니다. 하지만 진짜 힘은 말에 있지 않습니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증거되는 것이며, 소리치지 않아도 빛처럼 드러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 하루하루를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복음의 길이며, 교회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소명인 것입니다.